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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리뷰>모든 집들은 아름다울 권리가 있다
농업회사법인 작은알자스 주식회사 충주지점 (ip:) 평점 0점   작성일 2021-07-29 추천 추천하기 조회수 125

신이현 작가는 충주에서 프랑스인 남편 레돔씨와 농사를 짓고 사과와인을 만들어 판매한다. 현재 와이너리를 건축중이다.
양조장 짓기는 느리게 진행되었다. 설계 도면이 나왔지만 뭔가 미흡한 느낌이 드는데 그것이 뭔지를 모르겠다. 포도나무를 심을 때 언제쯤 이 나무에 열매가 열리고 나는 몇 년이나 따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집을 지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집에서 몇 년을 살게 될 까. 내가 죽은 뒤 이 집은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되며 누가 사용할까. 몇 년을 살겠다고 이렇게 내 모든 것을 다 쏟아 넣어야 하나. 다들 가장 경제적인 방법으로 지으라며, 내가 가장 혐오하는 건축 재료들을 나열하며 충고한다. 죽기 전에 또 하나의 쓰레기를 만들고 가야 하나?


신이현 작가


신이현 작가
 
우리나라에 고층 아파트가 많은 것은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그런 삶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용적인 사람들이다. 도시의 풍경과 산책자의 미관보다는 ‘지금’ ‘내가’ ‘안에서 편하게’ 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고층 아파트에는 <미래에 이것은 어떻게 남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없다. 많이 아쉽다.

안은 개인의 것이지만 바깥은 모두를 위한 공공의 것이 집이다. 아름답지는 않아도 적어도 산책자의 눈은 아프지 않는 집을 짓고 싶었다. 양조장이라는 기능성에 충실한 설계를 했지만 뭔가 풀리지 않는 외관의 미흡함을 도움받기 위해 충주에서 공간 인테리어를 하는 지인을 만났다. 그런데 이 분은 건축시공도 한다고 했다.

“아, 그럼 우리 양조장을 지어주세요.” 나는 이렇게 부탁했다. 시공사를 이렇게 쉽게 결정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평소 그녀의 작업을 좋아했고 신뢰했다. 설계를 하는 내내 시공사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다들 ‘시공사를 잘 만나야 한다. 시공사를 백퍼센트 믿으면 안 된다.’ 등등의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했다.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잘 만날 수 있는지, 잘 만났는데 어떻게 믿지 않을 수 있는지, 어쩌라는 말인지, 집짓기의 두려움만 들추는 충고들이 난무했다.

“옆에 있는 계단을 이렇게 앞 중앙에 넣어봤어요. 어떤가요?” 그녀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건물 중앙에 배치했다. 디자이너의 한 수 라고 할까. 단지 계단을 중앙으로 옮겼을 뿐인데 건물의 느낌이 달라졌다. 안정감이 생기면서 밋밋함이 사라지고 아름다워졌다. 그녀와 함께 설계도 최종안을 마무리 지어 건축 사무소에 넘어갔다. 1층은 철근 콘크리트이고 2층은 목조 건물로 내진설계를 해야 했다. 그 외 제조장이 받아야 할 환경검토서도 작성한 뒤 건축 하가서가 시청으로 들어갔다. 이런 과정들은 생각보다 느리게 진행되었다. 그래도 시공사가 정해지니 심리적 안정감을 생겼고 한시름 놓였다.

건축허가가 떨어지자 경계측량사가 오고 지질 검사도 진행되었다. 낯선 이들이 내 땅에 와서 뭔가 하는 것을 보니 아,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모레면 착공계가 들어가고 일주일 뒤쯤엔 첫 삽을 뜰 것이라고 한다. 바깥은 이글이글 불타는 여름이다. 3월에 착공을 시작할 예정이었는데 여름까지 왔다. 이제 대출만 받으면 양조장 짓기의 본격적인 항해가 시작될 것이다.

가장 먼저 양조장 지을 자리에 빼곡하게 자란 키 큰 호밀부터 벴다. 예초기가 아닌 낫으로 잘라 잘 묶어서 텐트 아래 쌓아두었다. 레돔은 이 호밀을 양조장 옆 창고를 짓는데 쓰겠다고 했다. 양조장과 이층 목조주택은 시공사가 짓겠지만 창고 정도는 스스로 짓고 싶다고 했다. 가능하면 모든 재료는 근처에서 나는 것으로 사용할 예정이었다. 양조장을 짓기 위해 땅을 파면 흙이 나올 것이고, 그 흙에 이 호밀짚을 섞어 벽으로 쓸 생각이었다. 레돔은 자신의 고향인 알자스 농가 스타일의 창고를 지어보려고 했다.


요즘 세상에 창고를 짓겠다고 호밀을 키우는 사람이 있을까. 조금 미친 짓처럼 여겨졌지만 레돔은 자기만의 건축에 열정을 가졌다. 과연 우리 손으로 호밀과 흙을 짓이겨 집을 짓는 순간이 올지, 그런 순간을 상상하는 것은 참으로 힘들 것 같으면서도 벅찬 감동이 느껴졌다. 마음을 담은 그 시골 헛간은 검소할 것이고 무엇보다 아름다울 것이다. 모든 집들은 그럴 권리가 있다.

출처 : 충청리뷰(http://www.ccrevie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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