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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리뷰>사과술 효모들도 이사준비를 하고 있을까
농업회사법인 작은알자스 주식회사 충주지점 (ip:) 평점 0점   작성일 2021-12-29 추천 추천하기 조회수 602

포도밭에 서리가 내리고 다음 날엔 눈이 쏟아졌다. 강추위가 시작되었고 건축 현장이 멈추었다. 아직 끝내지 못한 것이 많다. 남편과 나는 오전에는 수안보 건축 현장으로 갔고 오후엔 엄정 양조장으로 가서 와인 작업을 했다. “11월이 딱 한 달만 더 있으면 올 해 안에 끝낼 텐데!” 현장 소장님이 이렇게 말하며 발을 구른다.



                                                                                                          신이현 작가


양조장을 지으면서 우리의 일상은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갔다. 건축 현장에 가면 ‘신 소장’이 되어서 수로와 배수로, 전기를 이야기 하고 양조장에 가면 경리 아가씨가 되어 병을 닦고 라벨을 붙이고 우체국을 가고 청소를 하고 서류작업을 한다. 마케팅 멘토링이란 것도 듣는다. 새 양조장을 짓느라 대출을 냈으니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경각심이 생겼다.


남편은 한파에 나무를 보호할 보온재를 ‘지금 당장’ 사달라고 한다. 현장 소장님도 욕실타일을 ‘지금 당장’ 선택해야 한다고 호출한다. 두 남자 다 더 추워지면 문제가 심각해진다고 외친다. 나는 코에 김을 뿜으며 농자재 가게에 가서 보온재를 사고 타일 가게로 간다.


보온재를 받아든 레돔은 나무 얼어 죽는다고 밭으로 가더니 밤이 깊어서야 돌아온다. 밤새 공부하는 사람은 봤지만 밤새 밭에서 일하는 놈은 처음 봤다. 어두운데 뭐 보이는 게 있더냐고 했더니 밤에는 그렇게 춥지 않았다고 말한다. 아직 어린 무화과나무와 감나무 라벤더 키위 같은 추위에 약한 나무들을 감싸주고 포도나무에는 왕겨를 덮어주었는데 반밖에 못했다고 한다. 밭을 떠나면서 건축 현장을 한 바퀴 돌았는데 수로 부분이 문제라고 했다.


양조장 벽을 흙으로 덮어 더위와 추위를 조절하려고 했는데 수로를 그렇게 아래로 내면 곤란하다고 했다. 마당으로 들어오는 길도 나무를 심기 위해 2m를 남겨달라고 했는데 모양이 잘못 잡혔다고 했다. 포클레인이 어린 사과나무와 체리나무 가지를 부러뜨렸다고 했다. 여름이면 모기가 생길 텐데 하수구 맨홀 구멍은 왜 그렇게 깊으냐고 했다. 환풍기는 왜 양쪽방향 회전하는 것이 없느냐고 했다. 그래야 술 발효 시에는 이산화탄소를 밖으로 빼고, 바깥 기온에 따라 공기를 빨아들이거나 뱉거나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옥상 수로 배관은......


나도 이제 모르겠으니 당신이 다 알아서 해결하라고 했더니 불같이 화를 낸다. 나라고 불같이 화를 낼 줄 몰라서 안내는 줄 아는가보다. 행복하게 살자고 새 집을 짓는데 그 집 때문에 싸우게 되다니 집이고 남편이고 모든 것이 싫어졌다. 공사가 거의 마무리 되어 가는데, 매번 문제를 물고 오고 남편이 나를 피곤하게 한다. 그는 ‘문제를 물고 온다’는 말에 펄펄 뛴다. 나는 ‘당신이랑 살기 싫어졌으니 집짓기 여기서 스톱하자’고 한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그는 입을 다물고 풀이 죽어서 안방으로 가버린다. 오늘 한 3년 정도 더 늙어버린 기분이다.


화해할 사이도 없이 날은 밝아왔고 우리는 또 현장으로 간다. 포클레인이 와서 마당에 길을 만들고 있다. 현장 소장님과 전날 레돔이 말한 문제들을 상의한다. 이쪽저쪽 모퉁이에 가서 보며 해결책을 짜낸다. 길 내느라 나무로 모양 잡는 분은 콧물을 줄줄 흘린다. 어른이 그렇게 굵은 콧물을 달고 다니다니 정말 웃긴다. “이렇게 추워서는 시멘트를 부을 수가 없네요. 큰일났네!” 도로 쪽엔 시멘트 자르느라 먼지가 날리고, 그 옆에서 오배수관을 연결하는 두 분은 볼과 손등이 시뻘겋게 얼었다. 장갑도 안 끼고 모자도 안 쓰고서 연방 춥다고 난리다.



문제들을 대충 해결한 뒤 엄정 양조장으로 달려가 ‘미스 신’이 되어 경리 일을 시작한다. 레돔은 12월 초에 착즙한 사과즙을 꺼내 와 맛을 보라고 한다. 추위에 꼼짝도 않던 즙 속의 효모들이 서서히 움직이며 발효를 시작한 것이다. 한 모금 마시니 아기 효모들이 입 안으로 들어와 귀엽게 톡톡 쏘면서 간질인다. “이럴 수가. 이건 정말 맛있잖아!”


살아있는 효모들이 즙과 함께 목구멍으로 들어가니 웃음이 나고 근심과 피곤함이 누그러졌다. 그런데 양조장 안 가득 살고 있는 이 효모들은 새 양조장으로 이사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사실 양조장은 인간보다 효모가 살기 좋게 지어져야 하는데 잘 하고 있는지 문득 의심스럽다. 매년 맛있는 술을 만들어주는 이 효모들을 어떻게 데리고 갈까. 잔 속의 효모들이 튀어나와 내 귓가에 붙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우리가 알아서 여기저기 잘 붙어서 갈 테니 걱정 말고 해피 뉴이어 하세요!”


 


출처 : 충청리뷰(http://www.ccrevie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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