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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리뷰> 글쓰기가 제일 쉬웠어요
농업회사법인 작은알자스 주식회사 충주지점 (ip:) 평점 0점   작성일 2021-10-21 추천 추천하기 조회수 143

신이현 작가는 충주에서 프랑스인 남편 레돔씨와 농사를 짓고 사과와인을 만들어 판매한다. 현재 와이너리를 건축중이다.




 


외모보다 심성이다. 이런 말은 사람한테만 하는 줄 알았더니 건물에도 해당된다. 설계를 하는 동안에는 건축물의 외관에 관심이 많았다. 동네 집들을 보면서 왜 저런 모양으로 지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 집은 무엇보다 주변 풍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오래 살아도 싫증나지 않는 평범하고 다정한 집이기를 원했다. 굉장히 소박한 바람인데 쉽지 않다. 꿈이 소박하다고 건축비도 소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땅을 파기 시작하니 외관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 더 큰 문제들이 숨어있었다.


신이현 작가
우리 양조장 부지 뒤쪽은 산인데 비가 오면 땅 속으로 물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이것을 보고 있으면 굉장히 공포스러웠고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었다. 건축할 집 뒤쪽으로 길게 유공 관을 심고 건물이 앉을 자리 아래로 배수관을 내 물이 땅 속 깊이 흘러가게 하는 공사를 해야 했다. 땅을 엄청 깊이 파고 큰 배수관이 들어갔다. 그것을 덮고나자 건물 앉힐 기초 작업이 시작되었다. 포클레인이 돌아가고 시멘트가 부어지고 철근 까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비가 내리지 않는 한 현장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나는 왠지 모르게 싱숭생숭하다.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

“전기랑 수도에 대해서 상의할 것이 좀 있는데요. 자리를 옮겨야 할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니 소장님께서는 “진작 미리미리 말해야지.” 하신다. 전기 설치를 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줄은 몰랐다. 큰일났다 싶어서 달려가니 전기 하시는 분과 수도 배관하시는 분들이 이미 와서 작업 중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인가 싶어 흥분해서 팔팔 뛰니까 전기 하시는 분이 천천히 설명해달라고 한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젊은 분이다. 안경 너머 눈매가 예리해 보이는 것이 꼭 전기의 정령 같다.

재미있는 것은 철근 사이로 수도와 배수관을 까는 통통한 분은 근처 충주호 깊은 곳 용궁의 주민이 잠시 올라온 것 같다. 흰 머리카락이 늙은 물고기의 수염처럼 보인다. 철근 시멘트 하시는 분은 단단한 체구에 검은 모자와 검은 썬글라스, 검은 마스크의 멋쟁이 갱단 패션을 하고 아무 말이나 마구 던지며 다닌다. 시멘트나 철근처럼 강하고 거칠어 보인다. 이 와중에도 일하는 분의 스타일이 너무나 독특해서 건축주의 임무도 잊고 멍하니 이분들을 구경한다.

현장은 거칠지만 이야기를 해보면 대체로 잘 받아주는 편이다. 문제는 서로 시간 맞추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소장님은 늘 미리미리 말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 ‘미리’가 언제인지 인질이 없다. 기술자들은 그냥 자기 시간 날 때 벼락처럼 와서 일을 하고 가버린다. ‘이건 바꿔야지’ 하고 생각하고 가면 어느새 다 해놓고 가버렸다. “설계도에 나와 있는 대로 했어요.” 이렇게 말씀하신다. 도면은 집 지으면서 바꿀 수 있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렇게 쉽지 않다. 완벽하지 않는 도면을 쥐고 자꾸 놓치면서 가는 것이 건축 시공인가보다.

“그렇지만 이 창문은 조정해주셔야 겠어요.” 나의 부탁에 소장님이 목수에게 전화를 걸어 창문 높이 조정하는 일이 다시 진행된다. “이런 건 미리미리 말해야지.” 소장님은 또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반을 차지하는 문장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일을 함께 하지만 소장님과 나는 서로 바쁘다.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세심하게 이야기 할 시간이 별로 없다. “아아, 이게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 이미 돌이킬 수가 없는 순간이 자꾸 나온다.


생각해보면 세상에 글 쓰는 일이 제일 쉽다. 이건 그냥 책상 앞에서 나 혼자 자판을 두드리면 된다. 누구와 상의할 필요가 없다. 대궐을 지었다 해도 삭제키를 누르면 끝이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돈도 들지 않는다. 아, 세상에 작가만큼 쉬운 직업이 있을까. 더 열심히 이 직업에 몰두하지 않은 것이 참 후회스럽다.

출처 : 충청리뷰(http://www.ccrevie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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