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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리뷰>양조장 신에게 미리 소원을 말하지만
농업회사법인 작은알자스 주식회사 충주지점 (ip:) 평점 0점   작성일 2021-11-26 추천 추천하기 조회수 550

포도밭 고랑에 호밀 뿌릴 준비를 하면서 양조장 짓는 것을 본다. 레미콘이 윙윙 돌아가며 시멘트 타설이 한창이다. “저 집 어마어마하게 클 것 같아.” 엄청나게 큰 트럭들이 들이닥쳐 돌아가는 것을 남의 집 구경하듯이 멍하니 바라본다. 시멘트나 철근, 거푸집, 타설, 어느 하나 아는 것이 없으니 그냥 바라보기만 한다. 그렇다고 사는 일을 멈추고 건축에 매달릴 수도 없다. 때를 놓치면 안 되는 농사일과 양조 일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신이현 작가



서리가 내리기 전에 퇴비가 될 호밀 뿌리기를 끝내야 하고, 레드 와인 병입도 늦출 수 없다. 연말에 나왔음 싶은 로제 스파클링 와인도 발효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곧이어 사과도 착즙해야 하다. 프랑스에서 수입한 병을 싣고 온 선박은 선원이 코로나에 걸려 중국으로 가버려 언제 올지도 모른다 한다. 병이 없으면 탱크 속에 들어있는 와인은 어떻게 되는 거지? 모든 일들이 저 레미콘처럼 뒤숭숭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가을 잡초를 눕히고 호밀씨앗을 뿌리고 나니 시멘트 타설과 양생이 끝나고 2층 목조 주택 골조작업이 시작된다. 콘크리트와 달리 목조 주택은 굉장히 평화롭게 진행된다. 목수들은 조용히 일을 한다. 가을 날씨가 아주 좋다. 나는 따뜻한 차를 보온병에 가져가지만 늘 휴식 타임을 못 맞춘다. 한쪽 벽이 올라가고 빠르게 다음 벽이 올라간다. 들보가 올라가고 가지런히 선 나무들이 벽체를 만들어준다.

목수가 하늘에 올라가 지붕을 만드는 모습이 아름답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지붕이 생겼다. 그러자 하늘 한 조각이 우리 집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유로웠던 허공이 이제 우리 집 거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늘을 훔쳐 넣은 기분이 들었다.

목수가 모두 떠난 저녁이면 우리는 나무로 칸을 낸 집에 들어가 여긴 부엌, 여긴 아들 방, 여긴 안방, 창문..... 창으로 포도밭과 나지막한 동네를 바라본다. 여기서 우리 제 2의 인생이 시작되겠지. 프랑스에서 온 남자와 경상도 여자,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닻을 내리고, 하루하루 집이 되어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설레면서도 막연한 불안감이 올라온다.
평생에 한 번 밖에 없는 가장 큰 일을 하고 있는데 제대로 되어가는 건지 의문스럽다. 가진 돈을 모두 털어 넣고 대출까지 냈는데 무슨 실수가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 맞죠? 이런 말을 하면 소장님은 그냥 헛웃음만 치고 어깨를 으쓱하신다. “모레 비가 온다하니 내일 지붕 올릴 일이 바빠요. 이따가 징크 색깔이나 골라 주세요.” 소장님은 도대체 속을 모르겠다.

지붕은 파리의 지붕들처럼 회색 징크로 골랐다. 지붕이 올라가니 이윽고 집의 형태와 크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지붕을 얹고 나니 다음 날 비가 온다. 가을비가 많이 쏟아진다. 목조 공사를 하는 동안 한 번도 비가 내리지 않더니 비가 지붕을 씌우고 와주니 운이 좋다고 한다. 마침 호밀 씨앗을 뿌려 비가 내려줬으면 했는데 맞춤비가 내린다. 비가 오니 목수도 없고 다른 일꾼도 없고 건축 현장이 텅 비었다. 완공이 되지 않은 집을 돌아보는 이 순간이 평화롭다.

아직 실내 벽이 올라가지 않은 텅 빈 1층을 둘러 볼 때가 좋다. 이 빈 공간에서 일어날 미래의 일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포도밭에 있는 효모들이 이곳에 깃들어 살 것이다. 술을 맛있게 익게 해줄 효모들의 집이다.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코를 벌룸거리며 행복감에 젖어들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무엇인가에 포근하게 안긴 느낌이 들 것이다. 그것이 바로 바깥 포도밭 땅과 나무와 하늘에 사는 효모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쩌면 양조장을 관할하는 술의 신이 이미 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조용히 인사했다. “안녕, 술 신아. 잘 부탁해. 맛있는 술을 만들어줘야 해, 알지?” 하고 염원을 말해본다. 내가 이런 감상에 젖어있는 동안 레돔은 바쁘게 줄자를 들고 다니며 벽과 들보의 높이, 문의 폭들을 재더니 얼굴이 뻘개져서 온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문의 높이가 죄다 2미터가 되어있네! 폭도 1미터 80이고. 왜 이렇게 된 거지? 이것 좀 봐. 배수구는 왜 여기에 뚫었지? 이거 원래 계획된 거 아니잖아?” 또 문제가 생겼나보다. 집을 짓는 동안 남편은 매가 병아리를 채 오듯이 문제를 물고 온다. 그때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돌이킬 수 있는 건지 한번 알아볼게.” 이렇게 말하고 소장님 전화번호를 꾹꾹 누른다.

 

*신이현 작가는 충주에서 프랑스인 남편 레돔씨와 농사를 짓고 사과와인을 만들어 판매한다. 현재 와이너리를 건축중이다.

출처 : 충청리뷰(http://www.ccrevie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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